계족산 봉황정 뒤에 마을이 있다. 산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산디마을이라 불린다.
산디마을 앞으로 계족산에서 시작된 용호천은 신탄진에서 금강을 반갑게 만나 얼싸안는다.
용호천 옆 자리 잡고 있는 보리밭
장동산림욕장에서 흘러 온 장동천 물을 품은 용호천은 장동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그 냇가 양 옆으로 넓은 보리밭이 자리 잡고 있다.
천을 따리 이어진 산책로 옆에는 아담한 정자가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보리밭 가에 장동산람욕장의 길목인 만남의 광장이 위치한다.
오래전에는 마을 앞길을 걸으면서 흔하게 봤던 보리밭이 지금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다가 우연하게 보리밭을 만나면 더 반가운 이유가 있다.
● 보리도 타이밍, 인생도 타이밍
가을은 거두는 절기이다. 많은 곡식을 수확한 후 땅을 갈아엎고 고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작은 보리 씨앗을 뿌렸을 것이다.
겨울을 코 앞에 두고 점점 짧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씨앗은 싹을 틔우려 애를 썼다.
보리 파종은 때를 잘 맞춰야 한다. 일찍 뿌려 싹이 빨리 나오면 추위에 얼어 죽는다. 반대로 늦게 뿌려 추위가 오면 싹을 틔우기가 어렵다. 웃자란 보리가 얼어 죽지 않고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보리밟기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니 보리 씨앗을 뿌리는 시기는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듯 보리 뿌리는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일이 엉켜 버린다. 다시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엉망이 되어 버린다.
● 성장과 수확 시기, 비움과 채움의 시간
장동 보리밭은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보리 씨앗 뿌리는 타이밍을 잘 맞췄나 보다. 한 겨울 얼어 죽지 않고 긴 가뭄에도 잘 버티고 이겨냈다.
강한 비바람이 불어 수확을 앞둔 보리가 안타깝게도 땅에 엎치는 때도 있다. 지금 만난 보리는 튼튼하게 잘 자랐다. 강한 힘으로 극복했다.
보리는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보리는 정들었던 밭을 떠나갈 것이다. 오래 머물렀던 자리를 잠시 비울 것이다.
다시 가을이 오면 그 빈자리를 채우려 돌아올 것이다. 그 텅 빈자리를 상상해 본다. 빈틈없이 꽉 채워진 보리밭도 좋다. 보리가 떠난 빈자리도 보기 괜찮다.
많은 것들로 꽉 채워진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텅 빈 들녘처럼 마음을 비워낼 수 있을까.
지금은 '채움'보다 '비움'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 지붕 세 가족, 보리, 개양귀비, 수레국
용호천 옆 산책로를 따라 걸어본다. 그런데 누렇게 익은 보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때를 기다리는 푸른 보리 사이로 울긋불긋 꽃이 보인다.
보리는 마음도 좋다. 좁은 빈 공간을 개양귀비에게 양보했다. 보리보다 한 뼘 더 큰 양귀비는 보리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예쁘게 꽃을 피웠다.
- 붉은 개양귀비 꽃말 : 위안, 약한 사랑, 덧없는 사랑
개양귀비는 어디서 왔을까. 넓은 보리밭이 부러워서였을까. 보리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일까. 보리는 개양귀비와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
보리밭에 개양귀비 수보다는 못하지만 진한 보라색 꽃이 피었다. 수레국화(물수레국화)이다. 위에서 자세히 들여다본 수레국화가 참 예쁘게 보인다.
그 위에 사뿐하게 앉은 꿀벌은 수레국화와 긴 사귐을 이어가고 있다.
- 수레국화 꽃말 : 행복
한 지붕 세 가족이 아니다. 일찍 꽃을 피운 코스모스가 보인다.
더 이상 크고 싶지 않은지 보리보다 훨씬 작은 키에 꽃부터 활짝 폈다.
와동에서 고개를 넘으면 장동 마을이다. 장동산림욕장으로 가는 길목에 보리밭이 있다.
흔들거리는 그네 의자에 앉아 보리밭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부른다. 애창곡 '보리밭'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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