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여행

서울 궁궐 여행, 경복궁 북쪽 후원 향원정과 건청궁

by 워~워~ 2023. 10. 25.
728x90
반응형

서울 궁궐 여행, 조선의 으뜸 궁궐 경복궁

경복궁은 1395년에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왕이 거처하는 궁궐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이다.

 

위로는 백악산에 기대어 터를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대로)가 있었다.

 

정도전이 지은 ‘경복(景福)’이란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리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광화문
광화문
근정문
근정문

 

광화문과 근정문을 지나면 경복궁의 중심 근정전이다.

근정전 옆 경회루를 만난 후, 계속 오르면 경회루에 뒤지지 않는 연못과 정자가 기다린다.

 

근정전
근정전
경회루
경회루

향원지와 아름다운 풍광의 어울림, 향원정

향원정은 경복궁 북쪽 후원 영역에 조성된 정자이다. 연못인 향원지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

 

향원지를 한 바퀴 돌아보며 멋진 풍경을 담아본다. 어느 방향에서든 향원정 정자를 중심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연못 주변에는 작은 의자들이 있어 잠시 앉아 쉬면서 연못에 반사되는 향원정과 북악산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향원정
향원정1
향원정
향원정2
향원정
향원정3
향원정
향원정4, 취향교

향원정과 건청궁을 연결한 다리, 취향교

취항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이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발굴조사를 거쳐 취항교 원래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9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을미사변 슬픈 역사의 현장, 건청궁 곤녕합

멋진 향원정을 둘러보고 취향교 다리 입구에 도착하면, 바로 건청궁 입구이다.

현대사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 건청궁 안으로 들어가 본다.

 

건청궁 내부는 양반가옥 같은 느낌이 든다.

안채와 사랑채 등 여러 건물들이 연결되었다.

 

건청궁-입구
건청궁 입구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족산과 향원정 사이에 건청궁을 건립케 하고 명성황후와 기거하였다.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궁궐의 침전양식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 행각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 되는 250칸이다.

 

건청궁이 건립된지 3년이 지난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으며, 1885년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10여 년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한편 건청궁운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기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며,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곤녕합에서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 철거되어 이 자라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에 철거되었다.

 

문화재청은 건청궁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출처:경복궁 건청궁 안내판)

 

건청궁-마당
건청궁 내부

 

건청궁 입구에 들어서 다시 건물 뒤로 이동하면, 넓은 마당이다.

마당 정면에 보이는 건물, 슬픈 역사의 현장인 곤녕합이다.

 

곤녕합은 명성황후가 일상 생활공간을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7년간 왕실 의사로서 왕비를 모신 미국인 앨러스 벙커 여사는 명성황후에 대해 성품이 부드럽고 친절하며 조선여성의 미를 갖춘 미인이라고 회상하였다.

 

1895년 2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만주까지 침략하자 조선 왕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을 국내에서 철수시키려 하였다.

 

이에 일본 군부는 왕실을 압박하는 비상사태를 만들기 위해 10월 8일 새벽에 민간인 복장을 한 일본 장교들이 건달들을 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왕비를 시해하였다.

 

폭도들은 왕비의 시신을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궁(현 덕수궁)에 시신을 안치하고 국장을 지냈다.

(출처:경복궁 곤녕합 안내판)

 

곤령합
곤령합

[아름다운 여행] - 서울 고궁 여행, 경복궁 경회루 특별관람

[아름다운 여행] - 서울 고궁 여행, 경복궁을 대표하는 두 상징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