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령치에서 세걸산 "
▷ 지리산 가는 길
지리산 서북 능선을 간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산악회 버스를 탔다. 8시에 대전 톨게이트에 들어섰다. 버스 좌석은 빈자리가 거의 없다. 산행을 이끌어줄 산악대장님이 안내도를 배부했다. 3개 코스 중 선택을 하라고 했다. 1코스는 무리일 것 같다. 2코스는 뭔가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친구와 협의하여 3코스를 선택했다. 세 개 코스로 나누어 가다 보니, 산악대장님은 시간 걱정 때문인지 반복하여 안내했다.
1코스 : 성삼재→만복대→ 작은 고리봉→정령치→고리봉→세걸산→바래봉→운지암→운봉 용산 주차장(22㎞, 7시간 30분)
2코스 : 성삼재→만복대→고리봉→정령치→ 작은 고리봉→고기리(14㎞, 6시간)
3코스 : 정령치→작은 고리봉→세걸산→바래봉→운지암→운봉 용산 주차장(17㎞, 6-7 시간)
산악회 버스는 지리산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인월읍을 관통하여 산내면 소재지를 지났다. 지리산 계곡 속으로 진입했다. 뱀사골 계곡 입구, 달궁 마을을 지나 성삼재로 오르기 시작한다. 운전 하시는 기사님은 꼬불 꼬불한 경사면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린다. 출발지에 다가올수록 산행 준비를 서두른다. 등산용 스틱을 펼치고, 등산화 끈을 다시 조이는 분도 보인다.
10시 26분 성삼재에 도착했다. 성삼재에서는 1코스와 2코스를 가시시는 분들이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신 등산객들은 도로를 건너 성삼재를 출발한다. 성삼재에 구름이 자욱하다. 아래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3코스를 가는 등산객들은 정령치에서 출발한다. 성삼재를 돌아 나와 왼쪽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산악회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서 천천히 정령치로 향했다.
" 정령치 "
▷ 10시 53분에 정령치에 도착했다. 정령치 휴게소가 있다. 주차장, 화장실,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산 능선을 바라보시는 분들 보인다. 구름에 가려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늘 지리산 주 능선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두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바삐 산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 산으로 오르기 전, 오른 쪽 방향으로 시비가 서 있다. 구구절절 써 내려간 시 하나의 내용에 지리산에 대한 마음이 충분히 녹아 있었다. 시인 이원규 님의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제목의 시를 읽어본다.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 별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져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의 시를 마음에 담고 데크 계단을 올랐다. 그곳에는 이정표, 표지판 등 여러 개가 서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안내하고 있다.
이정표 기둥에는 백두대간 정령치라고 적혀있다. 성심재 방향인 만복대 2㎞, 지리산 37㎞이다. 오늘 가야하는 오른쪽 방향인 고리봉 0.8㎞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백두산까지는 1,363㎞이다. 언젠가 저 곳까지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렇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염원한다.
▷ 표지판에는 정령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정령치는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 경계에 위치하고, 지리산 서북 능선 해발 1,172m 고개로서 1988년 개설된 지방도 737호선이 통과하며, 북으로 덕유산, 남으로 지리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이다.
서산대사의 횡령함기에 의하면, 정령치는 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 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데서 유래되었으며, 신라시대 화랑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고도 한다.
동쪽으로는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성삼재와 왕시루봉, 북서쪽으로는 남원시 조망이 가능하다.
능선에서 정령치에서 주천면으로 내려가는 길을 담아 보았다. 800m를 오르면 고리봉이다.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오는 곳에도 고리봉이 있는데, 안내도에는 작은 고리봉, 고리봉으로 구별하고 있다. 고리봉에서도 아래는 구름으로 안 보인다. 구름이 산 능선을 넘나들고 있다.
▷ 가을에는 단풍을 빼 놓고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조금 있으면 산악회에서도 단풍이 좋은 곳으로 등산객들을 안내할 것이다. 지리산 능선도 조금씩 단풍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온 산은 붉게 물들 것이다. 가는 길에 나무가 우거져 주변을 조망할 수는 없다. 날씨가 흐리기도 하지만, 햇빛이 비친다 해도 시원한 그늘로 편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 세걸산 "
세걸산에 도착했다. 1,216m라고 적혀있는 표지석이 보인다. 그 옆에는 반달 모양의 전망대가 있다. 먼저 도착하신 분들 점심을 먹고 있다. 도착하는 우리를 보고 점심식사 하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구름 때문에 지리산 능선이 잘 보이지 않으니, 부채질을 하라고 한다. 출발하기 전에 부채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준비를 못해 와서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 입김으로 불어보라고 한다. 기가 약한지 입김을 아무리 불어봐도 지리산 능선을 감싸고 있는 구름은 전혀 움직임이 없다. 한번 웃고 간다.
12시가 넘었다. 전망대에 앉아서 점심을 먹을 준비를 했다. 멀리 간다고 친구도 간식을 많이 가져왔다. 떡과 고구마로 배를 채웠다. 이곳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구름 속 능선을 계속 바라보았다.
지리산은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년에 다시 오라고 하는 듯하다. 다음에는 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순간순간 구름인지 안개인지 산능선을 넘나 든다. 보일 만하면 다시 숨는다. 웅장한 지리산이 수줍어하는 것인가. 구름 속에 숨었다. 이제 수줍어할 때도 지난 것 같은데, 계속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다.
지리산 능선을 볼 수 있을까, 되돌아본다. 그리고 갈 길을 내다본다. 멀리 바래봉이 보이는 듯하다.
가는 길에 친구는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팀 관련 말을 이어갔다. 2023년도 신인 선수들과 상견례에서 감독님이 부탁의 말씀을 했다고 한다. 첫째, 장점을 키워라. 구단에서 나를 왜 뽑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장점이 있으니, 뽑힌 거다. 단점을 보완하려고 하다가 장점이 묻히는 선수들이 많다.
내 장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걷는 것인가. 산에 다니는 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산에 가고, 걷는 것이다. 다행이다. 그것 마저 없었으면, 방콕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누구나 장점 하나는 있다. 단점이 크게 마음을 차지하면, 우울한 시간이 길어진다. 짧은 시간에 변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장점을 잘 키워야 한다. 그것을 통해 즐거움이 더해진다면 무엇을 바라겠는가.
부운치에 도착했다. 능선 아랫마을이 부운 마을인 것 같다. 바래봉을 향해 계속 걸음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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