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눈앞을 가렸다. 온통 하얗게 보인다. 이슬비도 살며시 내리는 날, 회남행 시내버스 63번을 탑승했다. 벚꽃길이 아름다운 대청호 행복누리길을 걸을 생각이다. 세천공원과 오리골을 돌아 나온 버스는 세천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회남로를 달린다. 버스에 탔던 손님들은 거의 다 내리고 2명만 남았다. 모래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이정표에 보이는 사성애향탑부터 벚꽃한터까지 행복누리길이 이어진다. 이코스는 대청호오백리길5구간이 일부 지나기도 한다. 사성애향탑까지는 인도가 있지만, 이곳부터 방아실 입구, 와정삼거리까지는 인도가 없어 걷기는 좀 불편하다.
대청호행복누리길
대청호행복누리길은 벚꽃길로 선정('13국립수목원)된 회남로에 천혜 자연환경의 대청호를 주변으로 보행데크 및 각종 쉼터를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경관 거리와 휴식을 제공하고 대청호마라톤대회 및 벚꽃축제 등으로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가 있는 산책로이다.
도로 양쪽 가로변으로 오래된 벚꽃나무가 줄을 맞춰 서있고, 그 한쪽으로 산책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행복을 누리겠다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길에서 행복을 혼자 누리며 독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벚나무에서 꽃이 진지는 한참 지났다. 꽃이 진 후 길바닥에는 꽃대 같은 것이 떨어져서 수북하게 쌓여있다. 첫 번째로 고개 살짝 내민 대청호는 물이 많이 빠져 힘이 없어 보인다. 길 옆 작은 아카시아 나무도 새싹 돋아나기 시작했다. 하얀 꽃 피기 시작하면, 향기가 진동을 할 것이다.
신촌전망대 2, 팡시온 카페가 보이는 곳
행복누리길을 걷다 보면, 전망대가 몇 개 설치되었다. 첫 번째 전망대다. 늘어진 벚나무 가지에는 노란색으로 대청호오백리길 시그널이 걸려있다. 대청호 건너 반도의 끝 지점에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팡시온 카페가 안개로 희미하다.
신촌전망대 1(신촌한터, 주차장)
조금만 걸으면, 두 번째 전망대에 도착한다. 넓은 주차장이 있는 곳이다. 안내도에는 신촌한터라고 적혀있다. 행복누리길 조형물이 설치된 곳이 이 지점이다. 도로 위에는 국제금식기도원버스정류장이 있다. 비가 충분하게 내렸으면, 좋겠는데 이슬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좀 아쉬운 마음이다.
신촌동 전망대가 있는 곳을 지나고 있다. 대청호오백리길5구간 표지판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촌리 애향탑도 보인다. 대청호로 수몰된 고향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넘쳐흐른다.
갈 수는 없겠지만 어렸을 때, 뛰어놀던 고향 땅은 어디에 있으나 마음에 늘 그리고 있을 것이다. 대청호 옆 신촌동 마을에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파란색 지붕과 붉은색 지붕이 어우러져 예쁜 풍경화가 그려졌다.
길에서 좀 빗겨 난 담장 뒤에 노란 황매가 넘쳐난다. 발길을 돌려 황매 앞에 섰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활짝 피었다. 지금은 황매의 시기인가 보다.
걷는 중에 꽃 향기가 계속 코를 자극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꽃은 안 보이는데, 어디서 나는 향기일까. 진한 꽃향기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카시아 나무를 의지하여 위로 올라가고 있는 덩굴이 보인다. 으름이다.
덩굴 아래를 들여다보니, 으름꽃이 피었다. 아래에 숨어 있기도 하지만, 꽃색깔이 눈에 잘 띄지 않고 있다. 그러나 꽃 향기만큼은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활짝 핀 으름꽃은 황매에도 뒤지지 않는다.
"술 안주에는 완주가 최고"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이게 무엇인가. 며칠 전 이곳에서 대청호마라톤대회가 있었는데, 응원문구를 붙여 놓은 것이다. 어떤 회사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나 보다. 재미있는 응원 문구를 바라보며, 혼자 웃음을 지어본다.
최근에 소나무를 옮겨 심은 것인지 모르겠다. 식당 앞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에 영양재를 꽃은 것 같다. 뿌리를 잘 내리고 튼튼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다음에 이 길을 다시 지날 때,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기를 기대한다.
지붕 처마 아래에 플라스틱 그릇이 있다. 밤새 흘러내린 빗물이 가득 채워진 것인가. 지금도 빗물이 뚝뚝 떨어져 물결 일으키고 있다. 물방울 하나는 참 작게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모여 큰 그릇을 가득 채워 넘치게 한다.
벚꽃이 없던 벚꽃 축제가 개최되었을 때, 설치한 조형물이 그대로 남았다. 계속 두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는 전망대에서 지나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포토존은 다정한 사람이 함께 하면 더 멋진 모습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 한 장의 추억을 만들었을 것이다. 벚나무 가로수 그늘 아래 마주 보고 앉아 인생컷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막바지 발걸음 이어간다.
"걱정하지마, 이내 예쁜 꽃 피울테니까."
올해 벚꽃은 졌지만, 내년 이맘때쯤 때가 되면 예쁘게 다시 필 것이다. 지금은 벚꽃의 때가 아니다. 황매화의 때이다. 철쭉과 영산홍의 때이다. 이렇게 모두는 때가 있다.
모든 사람들도 각자의 인생에서 때가 있다. 그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옆에 있는 것은 피었는데, 내 것은 안 피었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나무와 나무가 다르듯, 꽃과 꽃이 다르듯, 나와 옆에 있는 누군가와도 다르다.
걱정하지마, 때가 되면 나도 예쁜 꽃 피울 것이다. 희망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오늘 하루 행복누리길을 걸었다. 모두 제때에 맞춰 예쁜 꽃 활짝 피우기를 기대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 벚꽃 한터가 있는 신상동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청호오백리길5구간인 백골산성 있는 산을 바라보니, 아직 안개로 덮여있다. 오늘 지나면 안개는 사라지고 시원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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