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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행

제주 여행, 벼루 열 개 붓 천 자루, 추사 김정희 유배지

by 워~워~ 2024.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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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최남단 마라도를 가는 배표를 구입했다. 안내하는 친구가 출발시간까지 틈새 시간을 이용하여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자고 한다.

 

운진항에서 송악산까지 거리가 가까운 편이다. 최남단해안로를 따라 조금만 달리면, 송악산이다. 송악산 입구를 지나 산방산 앞 형제해안도로 변에 잠시 정차했다.

 

형제바위
형제바위
송악산
송악산

 

해안도로 옆 빈 공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형제바위와 오른쪽 방향 송악산 해안을 담아본다. 다시 방향을 돌려 운진항으로 돌아왔다. 마라도에서 돌아온 후, 인근 모슬포항에서 가까운 추사 김정희 유배지를 찾아 간다.

 

천 자루의 붓을 닳게하다, 추사 김정희 유배지

-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대정읍 안성리 1661-1)

- 운영안내 : 화∼일, 09:00∼18:00

 

동쪽으로 종을 엎어놓은 듯한 모습 산방산, 동남쪽으로 박쥐가 날개를 펼친 듯한 모습 단산, 서쪽으로 모슬봉, 멀리 서남쪽으로 송악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대정마을이다.

 

대정(大靜)은 ‘크게 고요한마을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 넓고 크고 고요한 마을에 김정희 유배지가 자리잡았다.

 

진입로 옆에 추사 김정희 동상이 서 있다. 유배지에서도 굴하지 않는 여유 있는 미소가 넘쳐 흐른다. 유배지길 1코스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다.

유배길-지도
추사유배길 안내도

 

추사유배길 1코스, 집념의 길

총길이 8.6㎞로 추사선생이 주로 머물던 마을 주변과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찾았던 대정향교를 잇는 코스

 

추사유배길 2코스, 인연의 길

총 길리 8㎞로 추사의 편지, 차 등을 통해 추사의 인연을 떠올리는 길

 

추사유배길 3코스, 사색의 길

총 길이 10㎞로 추사가 제자들과 함께 사색을 즐기면 시름을 잊었던 길

 

 

김정희-동상
추사 김정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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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는 1코스 상세한 지도와 추사유배길에 관한 시 적혀있다.

 

추사선생의 수성초당에 부쳐/ 이한우

천리 밖 남쪽 물가 초가집 한 채

임금님은 수성을 볼 수 있는 은혜를 내리셨네

밤마다 외로운 마음 향 사르고 앉아

흐느껴 울적마다 흰 머리털 느네

 

김정희-유배재
김정희 유배지

 

이곳은 추사 김정희가 유배 와서 두 번째로 머물던 강도순의 집터다. 추사 본인은 귤중옥(橘中屋)이라 했고, 내방객들은 수성초당(壽星草堂)이라 불렀다.

 

제자 강위는 ‘수성사’라는 시에서 추사가 “달팽이집에서 10년간 가부좌를 트셨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달팽이집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서 추사는 ‘추사체’를 완성했고 국보 180호인 ‘세한도(歲寒圖)’를 그렸을 뿐 아니라 초의(草衣) 스님을 비롯한 당대의 명사들은 물론 제주도 사람들과 빈번힌 교류를 통해 일가의 전통을 이룩했다.

 

유배지-입구
유배지 입구

 

안거리(Main Residence)는 집주인 강도순이 가족들과 생활하던 곳이다. 강도순은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 가르친 제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강도순네 밭을 밞지 않고는 마을을 지나갈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전한다.

 

모거리(House Adjoining the Main Residence)는 김정희가 기거하던 곳이다.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위리안치(圍籬安置)의 형을 받은 김정희는 이곳에서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켰다. 그의 추사체는 벼루 열 개를 구멍내고 붓 천자루를 닳아 없어지게 했다고 할 정도로 고독한 정진 속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밖거리(Outer House, 바깥채)는 김정희가 마을 청년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던 곳이다. 김정희에게는 문하생이 많아 ‘추사의 문하에는 3천의 선비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제주 유배 시절에도 많을 제자를 길러냈다.

 

대정현성
대정현성

 

추사 김정희는 시(詩)·서(書)·화(畵) 분야에서 독창적이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예술가이다.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되어 헌종 14년(1848)까지 약 9년간 이곳에서 머물렀다.

 

유배 초기에는 포교 송계순의 집에 머물다가 몇 년 뒤 이곳 강도순의 집으로 옮겨 왔다. 이곳에서 살면서 제주 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으며, 제주 지역의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차를 매우 좋아한 김정희는 다도의 대가인 초의 선사와 우정을 나누었으며, 제주 지역에 차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김정희는 추사체를 완성하고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국보)를 비롯하여 많은 서화를 남겼다.

 

이곳은 집터만 남아 경작지로 이용되다가 1984년에 강도순의 증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되었다. 2010년 세워진 추사관에는 김정희와 관련한 역사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제주 추사관은 리모델링 중이라 내부를 살펴볼 수 없었다. 오래전 최악의 유배지로 꼽혔던 제주에서 삶을 승화시킨 추사 김정희의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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