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동 한우물 마을 가는 길
시내 곳곳에 아파트가 건설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신축되는 것도 있고, 재개발이 한창이다. 세월이 조그만 지나면, 시내 전체가 아파트 숲을 이룰 것 같다.
아직까지 옛 모습을 지니고 있는 동네가 진잠동이다. 진잠동은 법정동은 아니고, 행정동이다. 진잠동에 중심가인 원내동으로 3년 이상 출퇴근을 했으니, 지리적으로는 익숙해졌다.
진잠행정복지센터는 여러 법정동을 포함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대정동 한우물 마을이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드디어 그곳으로 가보려고 한다.
대정동은 유성대로를 가운데 두고 두 지역으로 나누어졌다. 산장산 능선으로 내려오면서 대정 3통 마을은 지난 적이 있다. 도로 반대편에 있는 곳은 아파트와 여러 유통단지가 들어서 있다.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아파트단지 뒤에 있는 마을이다.
약속을 마치고 진잠동도서관 근처인 교촌삼거리로 나왔다. 차량 통행량이 많은 유성대로 옆을 걷고 있다. 처음으로 대정동 한우물 마을을 가고 있는 중이다.
마을 입구까지 가는 버스도 있지만, 거리가 짧을 거라 생각하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궁금한 맘을 안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직선로를 따라 좀 걸어가다 보니, 대로 옆에 안내판이 보인다.
'한우물 마을과 동네 할아버지 유래비'까지 800m 정도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걸을만하다. 이차선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 들어갔다. 반대편 지역은 오랫동안 많은 수풀이 우거진 공터로 남아있다. 아마 이곳도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느 정도 걸어 들어온 것 같다. 한우물 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대전교도소 정문 앞 맞은편 지점이다. 교도소 앞에는 넓은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하다. 교도소 앞까지 212번 시내버스가 들어왔다가 돌아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왼쪽 방향 길로 들어섰다. 마을 길 앞에는 넓은 논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시 속 농촌마을이다.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른 체, 수시로 휴대전화 속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한우물 마을 골목길 풍경
마을 어딘가에 우물터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마주친 것은 마을 골목길과 벽화였다. 전혀 생각지 못한 풍경을 바라보니, 마음 한 구석이 설레기 시작했다.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골목길은 금세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골목 안은 인적이 없어 적막한 분위기이다. 시골인 고향에 가도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 거의 연세 드신 분들이 살고 계실 테니, 어린아이들을 본다는 것은 귀한 일이 되고 있다. 가끔 담 너머로 들려오는 개가 짖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다.
담벼락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오래된 대문 양 옆으로 복수초가 그려졌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꽃. 그렇다. 찬바람 부는 한겨울을 이겨내고, 어디 선과 활짝 피어났을 것이다.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 영원한 사랑, 슬픈 추억이라고 한다. 복수꽃의 꽃말처럼, 한우물 마을에도 영원한 행복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너와 나, 우리 모두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시인 나태주 님의 풀꽃도 적혀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첫 번째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다른 길과 이어진다.
마지막 집 대문으로 가로막힐 때까지 골목길을 걸었다.
골목길은 오래전 과거로 시간을 돌려놓았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맘 놓고 뛰어놀던 곳.
마을 앞길, 대문 앞 좁은 길 그리고 골목길이었다.
이웃사랑 한우물 마을 안내도
골목길을 따라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온 곳에 마을 안내도가 있다.
안내도 앞 벽에는 한우물과 동네 할아버지 유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안내도 뒤 나지막한 언덕길 옆에 한샘정 정자가 있다. 정자 앞 작은 공간에 한우물과 동네할아버지 유래비가 보인다.
우리 한우물 마을은 북동쪽으로 옥녀봉, 소태봉이 둘러싸인 곳에 원당, 복산 마을 등이 자리하고 남쪽으로 비옥한 논밭이 펼쳐져 있으며, 마을에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 팽남샘과 한디샘이 있어 대정동(大井洞, 한우물)이라는 지명이 생긴 평화롭고 정겨운 전통마을이다.
조선시대 1700년 전후 진잠현(鎭岑縣)에 속해 있던 마을에 임효생(林孝生)과 그의 부인 창원 황 씨가 살았다. 그들은 당시 흉년, 기근이 들어 살기 어려워진 동네 주민들을 구호해 일대에 칭송이 자자했는데, 그 선행이 한양에까지 알려져 숙종~경종 시대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라는 벼슬이 내려졌다. 임효생은 생을 마칠 때, 자신의 전 재산을 마을에 희사해 평생 실천해 온 이웃사랑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분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한우물 동계(洞契)가 만들어졌고, 동계가 주축이 되어 1724년(영조 즉위년) 11월 19일 한우물 마을 복산 기슭에 그의 묘비가 세워졌다.
이후 신상하(申相夏) 등 이름 모를 주민들의 선행과 재산 기증이 이어졌다. 동계에서는 임효생을 비롯한 기증자들의 뜻을 후세 교육의 귀감으로 삼아 매년 음력 시원 그믐날 제사를 지내며, 계원 간 친목과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300년가량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대전시가 개발되면서 1990년 2월 24일 임효생 등 기증자들의 묘소를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로 이장하였는데, 관리상 어려움이 많아 2014년 10월 26일 임효생 등 6인의 혼을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정동 산 13-5 번지 동계부지 내 유래비 아래 모시고 그분들의 역사적인 행적을 증명하는 비석과 석물도 함께 옮겨왔다.
유래비를 살펴보고, 좁은 시골 마을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 보았다. 한 교회 앞에 한우물이라고 쓰여있는 것이 보인다. 마을 안내도에 있는 팽남샘이 아닌가 추측된다.
길게 이어진 야산 아래 동네가 자리 잡았다. 작은 도로가 나오는 지점에 원당마을(대정1통) 표지석이 있다. 대전교도소 정문 앞에서 이어진 도로이다. 출발 전에는 마을에 들렀다가 되돌아 나가려 했는데, 너무 멀게 느껴진다.
계속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공사 중인 도안대로를 만났다. 관저동과 유성온천역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빨리 도로가 완공되어야 편리해질 수 있는데, 도로포장이 다 끝난 것을 보니 곧 연결될 것 같다.
대정동 한우물 마을을 돌아보았다. 주변이 개발되면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겠다. 오랜 전통이 살아있는 마을, 대정동 한우물마을이 오래도록 명맥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편안한 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종호수공원 바람의 언덕, 습지섬 (12) | 2023.02.23 |
---|---|
대전엑스포과학공원을 둘러싼 우성이산 (24) | 2023.02.20 |
대전 흑석동 매노천변 갑천누리길, 봄 내려온다 (28) | 2023.02.18 |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입구, 장안저수지 건너 팔마정 (18) | 2023.02.17 |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둘레 산책로 (22) | 2023.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