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궁, 덕수궁의 흘러온 이야기
◇ 경운궁, 덕수궁의 이전 이름
덕수궁에 머문 왕은 누구일까? 14대 선조, 26대 고종
덕수궁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다 돌아온 후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 거처(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처음 궁궐로 사용되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정릉동 행궁에서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덕수궁과 조선, 대한제국 역사
1392 조선건국
1592 임진왜란 발발
1593 월산대군 후손의 저택을 임시 궁궐로 삼고, ‘정릉동 행궁’이라 부름
1608 선조, 석어당(추정)에서 승하 / 광해군 즉조당(추정)에서 즉위
1611 광해군, 창덕궁으로 옯김 /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이라 칭함 / 광해군, 경운궁으로 다시 옮김
1618 인목대비를 폐위하여 석어당(추정)에 유폐
1623 인조, 즉조당(추정)에서 즉위 / 창덕궁으로 옮김
1876 강화동 조약 체결 / 문호 개방 시작
1896 고종,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1897 고종, 경운궁으로 옮김 / 대한제국 선포
1907 순종, 창덕궁으로 옮김 /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부르기 시작
1910 석조전 완공, 국권 피탈
1919 함녕전에서 고종 승하
◇ 고종의 개혁, 대한제국 황제
경운궁에 다시 왕이 머문 것은 조선 26대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잠시 머물다가 경운궁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고종은 대한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덕수궁에 여러 전각을 세우고 영역을 확장하였다. 당시 궁궐은 현재 규모의 3배 가까이 되었다.
◇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일제 강압으로 황제에서 물러남
1907년 고종이 일제 강압에 의하여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불리었다.
고종은 1919년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고종 승하 이후 덕수궁 권역이 빠르게 해체 및 축소되었다.
관람시간
- 덕수궁 09:00~21:00(입장마감 20:00) 석조전 내부는 예약관람
- 증명전 09:30~17:30(입장마감 17:00)
- 고종의 길
- 동절기(11-2월) 09:30~17:30(입장마감 17:00)
- 하절기(3-10월) 09:30~18:00(입장마감 17:30)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관람요금
- 개인(만 25세~64세) : 1,000원 / 단체(10인 이상) : 800원
- 만 24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내국인 무료
- 지역(중국) 주민 50% 할인
- 증명전은 무료
관람해설
덕수궁 약 60분 소요
- 덕수궁 전각해설은 정문에서 20m 직진한 곳에 있는 종합안내판 앞에서 시작
- 개인관람객(10인 미만)은 별도 예약 없이 해설 참여 가능
- 단체관람객(10인 이상)의 해설 참여는 사전예약 필수
- 외국어 전각해설은 외국인만 참여 가능(단, 외국인을 동반한 내국인에 한하여 참여 가능)
- 공휴일은 외국어 안내 없음
석조전 대전제국역사관 약 45분 소요(09:30, 16:30 해설은 약 60분 소요)
- 지층은 자유관람(지층 관람시간 09:30~17:30, 17:00 입장마감)
- 1-2층은 사전예약관람 : 덕수궁 누리집에서 예약 후 해설사와 동반
- 선착순, 1인당 최대 2매 까지 예약 가능
- 1-2층 영어 관람해설은 외국인에 한하여 현장예약 문의
교통편
- 지하철 서청역 1호선 2번 출구
- 2호선 12번 출구
- 덕수궁에는 주차장이 없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출처 : 덕수궁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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