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울증 환자입니다. 성인이 된 후 반복해서 우울증을 겪어왔죠."
맨체스터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 린다 개스크 박사의 이야기다.
우울증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의 고백, '우울장애' 강연 3강을 정리해 본다.
◇ 린다 개스크, 정신건강 특집 <우울장애>
1강 나의 특별한 우울
2강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3강 애도가 필요한 이유
4강 자살충동, 어떻게 대처할까
5강 제가 우울증일까요
사별과 애도, 우울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늘은 사별과 애도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이것은 우울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상실로 인해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계뿐 아니라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의 상실도 포함된다. 건강, 삶에서 우리의 역할, 자존감까지도.
특별한 누군가나 무언가를 잃으면 우리는 비애를 느낀다. 애도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우울과 비슷하지만 해소된다. 해소되지 못하면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우울과 애도 모두 우리를 상실에 취약하게 만든다.
사별은 가까운 누군가를 잃은 경험이다.
애도는 사별에 대한 반응으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이다.
비애는 우리가 상실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삶과 우리 자신을 회복한다.
애도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그렇다고 무난하게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눈물을 흘리고 강렬한 슬픔을 느끼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생각, 기억이 반복된다. 고인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일상적 경험으로 기억이 촉발되기도 한다.
아버지와 사별, 린다 개스크 자신의 이야기
제 아버지는 제가 의사 일을 막 시작했을 때, 돌아가셨다. 슬퍼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제가 어린 시절 살던 집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아버지를 만나길 기대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아버지를 봤다고 생각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다. 하지만 10대 때 있었던 일 때문에 우리 관계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애도하지 못했다. 애도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다. 저는 애도를 겪기까지 2∼3년이 걸렸다. 애도가 지연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펜데믹을 겪었고 코로나가 한창일 때, 우리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애도를 견디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애도의 증상 중 일부는 우울과 매우 비슷하다. 주변에 흥미를 읽기 시작하고 불면과 불안, 분조, 죄책감에 시달린다.
애도를 겪으면서 거쳐야 할 4가지
- 애도 1기 :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고인이 실제로 떠났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 애도 2기 : 그 다음은 고통을 헤쳐 나가는 거다. 이 시기에는 우울감이 심해지고 그리움과 상실의 고통이 커진다.
- 애도 3기 : 그리고 고인이 없는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간다. 이제 삶에서 고인은 없다.
- 애도 4기 : 마지막으로 고인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 고인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며 다시 삶을 살아가는 거다.
이 과정을 겪기까지 저는 몇 년이 걸렸다. 애도를 겪는데 30년이 걸린 사람도 봤고 첫 단계조차 지나지 못한 사람도 봤다. 소중한 이가 떠났다는 것을 여전히 믿기 힘들어했다.
애도의 핵심은 시간이 지나면 애도의 강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2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더 이상 깊을 불행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슬프로 그립다.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럴 이유도 없지 않나요?
사람들은 제게 말한다. “이제 아버지를 잊어야 해.” 하지만, 그렇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극복기에 접어들고 애도를 해소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고인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과 현실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힘든 과정이다.
지속성 복합 사별, 지연된 비애
이를 ‘지속성 복합 사별(Persistent Complex Bereavement)’이라고 한다. 나는 ‘지연된 비애’라고 부른다. 지연된 비애를 겪는 사람을 많이 봤다.
나는 많은 사람을 치료해 왔는데, 약 10∼20%가 사별 몇 달 후에도 여전히 죽음을 믿지 못한다. 계속해서 분노와 비통함, 강렬한 감정과 그리움을 느낀다. 심지어 고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거나 고인을 아주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남편과 사별한 매들린의 사례
제 환자 중에 남편과 사별한 매들린은 의사들한테 매우 분노했다. 의사가 뭔가 잘못한 거라고 확신했다. 매들린은 누군가 남편의 죽음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매들린은 남편을 매우 이상적으로 바라봤다. 남편이 얼마나 훌륭한지 우리에게 얘기했다. 매들린에게 남편은 천사였지만, 제가 보기엔 아니었다. 매들린의 친척에게 듣기론 죽은 남편은 결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들린은 남편을 완벽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매들린은 어떻게 해도 남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일상생활도 힘들어했다. 남편의 무덤을 계속 찾아갔고 때로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함께 쓰던 방은 남편이 죽기 전 그대로 남겨뒀다. 남편을 기리는 제단도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갈 생각도 했다. 죽은 사람을 따라가려고 했다.
매들린은 남편에게 매우 의존적이었는데, 알고보니 그들이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가 끔찍했던 메들린을 남편이 구해줬고 함께 도망쳤던 사연이 있었다. 그 후로 매들린은 행복했다. 매들린의 남편은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매들린의 눈에는 완벽했다.
아들이 자살한 헨리의 사례
저는 자살로 죽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는 이도 만났다. 자살로 인한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다. 헨리의 자식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헨리는 이 일로 심한 낙인을 경험했다.
그는 아들이 왜 자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점점 아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다 자란 이이를 잃는 건 매우 힘든 일이고, 어릴 때 부모를 잃는 것 역시 매우 힘든 일이다.
코로나 펜데믹 시기에 일어난 일들
코로나 시기에 일어난 일들을 눈여겨봐야 할 거다. 코로나 시기에는 애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하게 일어났고 고인의 시신도 볼 수 없었다. 노인들은 40년을 함께한 배우자를 잃고 슬픔에 잠겼다. 중환자실에 있다가 사망하면 인사조차 못 하고 전화로 작별인사를 했다.
가족 중 여럿을 잃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사람도 있다. 장례식에서 가족의 포옹조차 받을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애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복합 애도는 우리 건강에 해롭다. 마음이 아파서 죽을 수도 있다. 복합 애도를 겪는 사람들은 심장병에 걸리기도 한다. 술이나 약물에 빠지기도 한다. 매들린은 술을 마셨다.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우울증 이력이 있다면, 사별이 우울증을 촉발하기도 한다. 사별은 상실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족의 30%가 우울증을 경험한다. 가족력이나 과거력이 있는 사람은 더 위험하다.
하지만 정상적인 애도 반응을 우울증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궤도가 중요하다. 정상적인 애도는 오래 걸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 반면 우울증에 빠지면 기분이 점점 가라앉고 심지어는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이들은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애도하는 사람들 대부분 이야기할 시간과 공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애도하는 사람을 만나면, 뭘 해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애도에 관한 문화가 있었다.
제가 어릴 때는 커튼을 걷고 밖으로 나가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걸 지켜봤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문화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유족들에게 고인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대화를 시작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 꼭 상담가일 필요는 없다. 누구든 들어주는게 중요하다.
또한 지역사회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제공해야 한다.
매들린처럼 애도에 갇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살로 자식을 잃은 헨리도 전문가의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한 가지 문제는 전문적으로 치료 훈련을 받은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복합 애도는 정상적인 과정이 아닌데도 정상적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우울함이 심한 사람은 적절한 도움이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옛날처럼 애도하는 사람을 돕지 않는다.
우리는 상실의 고통으로 슬퍼하는 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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