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교차로를 지나면 누청삼거리이다. 누청삼거리에서 오른쪽은 상주 가는 방향이고, 왼쪽은 속리터널 방향이다. 지금은 속리산 법주사에 갈 때, 대부분 속리터널을 이용하여 가고 있다.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상주 가는 방향으로 다녔다.
상주가는 방향으로 조금 달리면, 말티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쪽 방향 도로명이 속리산로이다. 속리산로로 들어섰다. 깨끗하게 보이는 아담한 장재 저수지 옆을 지난다. 바로 인근에 국립 속리산 말티재 자연휴양림이 있다.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꼬불꼬불한 급경사 오르막 길이다. 평상시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던 자동차 변속기어를 저속으로 변환했다. 경사길을 돌아갈 때는 최대한 천천히 이동했다.
속리터널이 있기 전에는 속리산을 갈 때, 이곳으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큰 대형버스가 이곳을 어떻게 다녔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지금도 버스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말티재에 도착했다. 말티재 표지석에는 해발 430m라고 적혀있다.
주차장에는 친절하게 안내하시는 분들이 있다. 화장실 그리고 여러 조형물이 보인다.
우선 말티재 전망대로 향했다.
말티재 전망대
방금 통과한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2층으로 진입한다. 겉보기보다 내부 규모가 크고 잘 꾸며져 있다. 그곳을 지나면 데크로 말티재 전망대까지 연결되어있다.
말티재 전망대를 구경하러 오신 분들 많이 보인다. 천천히 위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꼬불꼬불한 말티고개가 한눈에 펼쳐졌다.
말티재 전망대 운영 현황을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안전수칙이 여러 개 적혀 있는데, 추락 위험이 있으니 난간에 기대지 말라는 내용이다.
- 운영기간 : 1월 - 12월
- 운영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 이용정원 : 70명에 한함/1회
2020년 개장한 말티재 전망대는 2층(폭 16m, 높이 20m)의 전망대 및 조형물로 12 굽이의 말티고개를 한눈에 내래다 볼 수 있는 사진 명소이다.
말티고개는 조선왕 “세조가 피부병으로 요양차 속리산에 행차할 때, 험준한 이 고개에 다다라 타고 왔던 어연에서 내려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것이 고개 이름의 유래이다.
또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이니, 말티고개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라는 이름 유래도 전해지고 있다. 고소공포증이 없다면, 최대한 가 에로 다가가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려 전망대 가로 다가갈수록, 공포가 더해진다. 연세 드신 분들도 천천히 올라서며, 멋있다고 사진을 찍으신다. 젊은이들은 오르는 고갯길을 배경으로 난간으로 다가가서 멋진 추억을 담는다.
말티재 정상으로 올라오는 꼬불꼬불한 길은 가을의 단풍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속리산으로 가는 길에 전망대에 잠시 들려서 옛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 주소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로 477
2015년에 착공되어 2017년 10월에 준공된 전국 최초 3층 복층 터널이다. 속리산 자연 생태계를 유지 회복하고 백두대간 속리산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발 430m에 위치한 관문의 1층은 차량통행 공간이다. 2층은 생태 문화 교육장과 역사문화, 사진 등의 상설 전시관으로 조성되었고, 3층은 동물과 식물이 서식하는 자연의 공간으로 복원하였다.
주차장을 비롯하여 휴게실과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과 함께 꼬부랑 둘레길이 시작되는 명소이다.(출처 : 보은군청, 문화관광)
말티재 전망대를 가려면 관문 2층 통로를 지나가야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전시회장을 둘러보았다. 보은 지역 관련 사진 공모전을 하고 있었다. 제법 넓은 공간이다.
복도 통로에도 예쁜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말티재 전망대 전경을 찍은 사진이 있어서 다시 사진으로 담았다. 드론을 이용하였는지 전경을 멋있게 찍은 작품이다.
그리고 작은 공간에 전시 준비로 바쁜 모습이다. 보은이 낳은 천재 시인 오장환 님의 전시회를 준비하고 았었다. 10월 말까지 전시회가 진행될 것 같다. 시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잠시 시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18년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서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시인은 휘문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지용 시인에게서 시를 배웠다.
휘문고등학교 문예 방 활동을 하면서 교지 《휘문》에 「아침」, 「화염」과 같은 시를 발표하고,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때 그이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어려서 박두진 시인과는 안성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며, 일본 지산 중학에 유학하고 온 뒤부터는 서정주, 김광균, 육사 시인 등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고향인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 5길에 문학관과 생가가 설립되었고, 1996년부터 오장환문학제를 실시해 오고 있다고 한다. 정서적으로 풍요하고 문학과 문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결초보은, 보은군 공동브랜드
주차장 입구 전면에 결초보은 표지석이 있다. 보은의 청정한 자연을 정성스럽게 드리겠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파랑은 맑고 깨끗한 환경, 녹색은 싱싱한 농특산물 의미하는 보은군의 공동브랜드이다.
죽어서도 은혜를 갚는다는 사자성어 '결초보은'이 보은군의 보은과 의미가 통한다.
보은 탄생 600년 기념비
조선 제3대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이 되었으나 자책에 시달리다 심신을 다스리고자 속리산 법주사에 왔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돌아가는 길에(서기 1416년) 이곳 지명을 보은이라 고칠 것과 현감을 두도록 명하였다.
고종 32년(서기 1895년) 보은군으로 개칭되었다. ‘은혜를 갚는 땅’ 보은 지명 600주년을 맞이하여 지방자치 경쟁력 지수 변동평가에서 2015년 말 전국 82개 군 중에 2위를 차지했다.
400년 후 보은 탄생 1천 년이 되는 서기 2416년에 타임캡슐을 개봉한다고 하는 내용이다.(2016년 10월 14일)
타임캡슐 조형물
모래시계를 모티브로 과거, 현재, 미래의 보은을 형상화하였다. 상부는 미래의 보은 1000년, 하부는 과거의 보은 600년을 상징한다.
보은군의 600년의 세대와 살아갈 천년의 세대가 하나 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을 모래시계와 보은대추로 “보은 천년을 품다”를 조형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출처 : 보은군 상징)
보은 말티재 전망대를 올라가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조망했다. 백두산 속리산 관문 2층에서 전시되고 있는 예쁜 사진들도 눈 속에 담았다. 전혀 모르고 있던 오장환 시인의 짧은 일대기와 보은의 유래까지 알게 되었다.
좁다면 좁은 작은 공간 말티재에 숨은 역사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보은 탄생 1000년이 되는 400년 후, 말티재는 어떻게 변했을까. 2416년 말티재를 찾은 사람들이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어떨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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