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또다른일상

폭염 속 여름 감옥, 옛 대전교도소 기억의 터에 적힌 글

by 워~워~ 2023. 8. 5.
728x90
반응형

대전 중구 목동에 자유총연맹자유회관이 위치한다.

건물 옆 넓은 공간, 주차장이다.

 

옛 대전교도소, 기억의 터

이곳은 옛 대전교도소 터로 오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당시 교도소였음을 알 수있는 망루와 벽돌 등이 그날을 기억하게 한다.

 

대전교도소에는 여러 유명 인사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수감되었던 인사로 여운형, 안창호, 김창숙 등이 기록되었다.

 

주차장 옆 좁은 공간에 기억의 터가 있다.

조형물 안 벽에 안창호, 신영복 선생의 글이 게시되어 있다.

 

그중 신영복 선생의 글을 꺼내본다.

폭염이 계속되는 지금, 감옥 안의 여름은 어땠을까.

 

짧은 글이 그 때의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기억의-터
옛 대전형무소 기억의 터
신영복-선생-글-소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선생의 옥중 서간

 

이 글은 신영복 선생의 옥중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일부를 발췌해 온 글로 수감 당시의 대전교도소의 상황과 신영복 선생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옛 대전교도소의 여름 상황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하게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삼십칠 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대전교도소는 목동에서 대정동으로 이전했다. 

대전의 변두리였던 대정동도 어느 덧 도시의 한복판이 되어간다.

 

대정동에 위치한 대전교도소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그 대정동 교도소를 아주 오래 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처럼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공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성인 여러 명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겨울이야 바짝 붙어서 자면 체온이라도 느끼겠지만,지금처럼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은 어떻게 지낼 수 있을 지 상상이 안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교도소 내부도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인권이 존중받고 다시 사회에서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기술을 배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영복 선생이 수감되었던 시기는 이보다도 훨씬 전이니대정동 교도소보다 환경이 더 열악했을 것이다.

 

계속되는 폭염에 안전안내문자가 수시로 도착한다.

긴 여름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친다.

 

충분한 휴식으로 건강관리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길어지는 무더위에 잠시 옛 대전교도소 기억의 터에 적혀있는 신영복 선생의 글을 꺼내봤다.

 

신영복(1941-2016)은 경남 밀양 출신의 경제학자로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재직 중에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1988년에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하였고, 출소한 날 수감생활의 소회와 고뇌를 담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하였다.

 

수감 중에는 대전교도소 서도반에서 만당 성주표 선생과 정향 조병호 선생에게 정식 서예를 배웠으며, 이후 어깨동무체라 불리는 서체를 창안하였다고 한다.

 

[편안한 둘레길] - 계룡산 동학사계곡 물놀이 허용된 1곳, 시내버스 타고 가는 방법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