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 기나 긴 여름이었다. 언제 물러갈 건지 고대하던 폭염과 열대야 그리고 가뭄까지 한 방에 게임이 끝난 느낌이다.
어제부터 내린 폭우는 세 마리 토끼를 잡고 기다리던 가을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아침 일찍 어제부터 계속되는 빗속을 걸어보며 폭염을 밀어낸 자리를 차지한 흔적을 담아본다.
고마워 폭우, 성난 물살 유등천
요즘은 극한과 집중 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비가 내렸다 하면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많은 피해를 발생하기도 한다. 호우경보가 내린 어제부터 오늘까지도 극한 호우, 집중 호우였다. 피해가 발생하여 안타깝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폭염을 밀어냈으니 고맙기도 하다.
어제밤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는 아침이 되어서야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우산을 쓰고 공원 옆 유등천 둑방길을 따라 올라가 본다.
밤새 비가 많이 내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난 7월에는 천변 둔치를 완전히 덮고 제방 아래까지 물이 차 올랐었다. 지금은 산책로가 있는 둔치 위로 살짝 덮은 상황이다.
천변 바로 옆 버드나무는 허리까지 잠기고 성난 물살은 포효하듯 힘차게 흘러 내려간다. 깜짝 놀란 듯 하얀 왜가리 떼가 물살 밖으로 나와 물 빠지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폭우는 긴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천변을 가득 채웠다. 청소를 깨끗하게라도 하듯, 쏜살같이 흘러내려가는 냇물은 천변 주변을 깨끗하게 쓸고 내려간다.
반가워 가을비, 시원해진 중촌공원
유등천을 빠르게 흘러내려가는 물살을 바라보고 바로 옆 중촌공원 안으로 들어선다.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하여 쉬지 않고 뿌려댄다.
참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는 공원 끝 지역은 다른 곳보다 지대가 낮은 곳이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집중호우가 내려 한강이 된다.
어젯밤부터 쏟아부은 빗줄기는 나무 밑 기둥을 잠기게 했다. 물은 제법 고여 무릎 아래까지 차 올랐다. 바로 옆 메타세쿼이아는 밤새 힘들었나 보다.
천둥과 번개, 강한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은 나무를 중심으로 동그란 원을 그렸다. 밤새 쉬지 못하고 깬 눈으로 지새운 모양이다.
지난 따뜻한 봄날, 예쁜 꽃을 피웠던 산사나무 가지엔 빨간 열매들이 많이 맺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빗물의 흔적이 표면에 이슬처럼 영롱하게 매달렸다.
무더위에 잠시 앉아 쉬던 나무 아래 의자 앞까지 물이 고였다. 비가 그쳐야 텅 빈 의자에 앉을 수 있을 텐데, 심심해하는 의자 위로 빗방울 떨어진다.
산사나무와 반대 방향에 자리잡은 애기사과나무는 열매가 몇 개 밖에 보이질 않는다. 폭염에 힘들었는지 나무 아래로 거의 떨어져 쌓였다.
우산 쓰고 빗속을 거닐었다. 폭우는 폭염과 열대야, 가뭄을 멀리 밀어냈다. 그리고 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폭염아 잘 가라, 폭우야 고맙다, 반갑다 어서 와라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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