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내리던 가랑비를 봄비라 생각했는데, 비 그치더니 여전히 구름 하늘 덮었다. 아직 아침기온은 영도 아래로 떨어지고 한낮도 한 자릿수를 가리킨다. 찬 바람도 더해져 체감온도는 더 쌀쌀하게 느껴진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 봄까치꽃
유등천 둔치를 지나 산책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 옷차림도 다양하다. 추위에 대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겨울보다는 조금 가벼운 복장도 있지만 완전무장한 분도 적지 않아 보인다.
천변 산책을 마치고 둑 계단으로 올라서기 전, 넓은 둔치 사잇길을 지나간다.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둔치는 아직 누런빛이다. 그 사이로 유난히 푸른빛을 발하며 올라오는 것이 있어 발걸음 멈춰 섰다.
이름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검색해 보니, 민망하게도 '큰개불알꽃'이다. 의심스러워 다시 찾아봐도 결과는 똑같다. 사진 속의 모습과 눈에 보이는 것이 똑같은 것을 확인하고 검색을 멈췄다.
처음에는 푸른빛을 보고 멈춰 섰는데, 아주 작은 꽃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봄의 전령사로 산수유와 매화꽃만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깊숙하게 조아리고 개불알꽃에 시선을 고정했다. 크기가 아주 작아 눈으로만 보기에도 너무 작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것도 화면을 확대하니, 본래의 모습이 조금 살아난다.
큰개불알꽃, 정식명칭일까
봄의 전령사로 개불알꽃이 있다. 큰개불알이라는 이름은 일제 감점기에 일본인 '마키노'라는 식물학자가 붙였다. 큰개불알꽃의 열매가 '개의 음낭'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름치고는 불편한 생각이 들지만, '일본 식물의 아버지'로 불리는 학자로서 쉽게 붙여졌으리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것도 일제의 잔재인가.
"큰개불알꽃, 누가 왜 이런 이름 지었는지 알면 놀란다"는 제목의 기사가 검색된다. 자전거 한강 산책, 꽃 이름에 담긴 일본의 흔적이라는 내용으로 상세하게 소개되었다.(2023.3.23.오마이뉴스, 성낙선의 자전거여행)
그래도 다행이다. 봄소식을 알려주는 전령사, 큰개불알꽃을 '봄까치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 야생화 동호회에서 우리 들꽃에 순수한 우리말 이름을 지어주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봄까치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
큰개불알꽃보다는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아주 이른 봄소식을 전해오는 전령사, 기쁜 소식을 가득 담고 찾아오는 봄꽃이다.
계속 불어오는 찬 바람에 땅에 납작 엎드렸다. 꽃도 활짝 피지 못하고 꽃받침도 오므리고 있다. 따뜻한 햇빛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야 오므렸던 꽃받침을 활짝 웃으며 열 것이다.
봄 까치꽃/ 정일근
겨울 속에서 봄을 보려면
신도 경건하게 무릎을 꿇어야 하리라
내 사는 은현리서 제일 먼저 피는 꽃
대한과 입춘 사이 봄까치꽃 피어
가난한 시인은 무릎을 꿇고 꽃을 영접한다.
양지바른 길가 까치 떼처럼 무리 지어 앉아
저마다 보랏빛 꽃, 꽃 피워서
봄의 전령사는 뜨거운 소식 전하느니
까치도 숨어버린 찬 바람 속에서
봄까치꽃 피어서 까치소리 자욱하다.
그러나 콩알보다 더 작은 꽃은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느니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돌리지도 않느니
...(하략)
시인이 노래했듯 콩알보다 더 작은 봄까치꽃은 봄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 봄을 기다리고 어디에 왔는지 찾을 때에 보인다.
그것도 무릎 꿇고 고개를 푹 숙여야 보일 만큼 아주 작은 꽃이다. 언제부터 피었는지 푸른 싹 올라온 봄까치꽃은 여러 곳에서 목을 길게 내밀고 꽃봉오리 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 잘 어울리는 들꽃 봄까치꽃을 들여다봤다. 무심코 지나치면, 꽃은커녕 풀도 보이지 않는다.
둔치 사잇길을 지나가다 들풀을 보려 다가 아주 작은 꽃을 발견했다. 너무 작아서 아주 가까이서 다가서 들이댄 카메라도 화면을 확대해야 제대로 보이는 꽃이다. 자세히 봐서 예쁘지 않은 꽃이 있겠는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화려해 보이지도 않아 눈길을 끌지 못하는 봄까치꽃이 기쁜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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