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일 일주일 넘게 남았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다가오는 벌초하는 날이다. 날씨는 조금 누구러졌지만, 한 낮 날씨는 아직 폭염에 가깝다. 뜨거운 날씨를 피하려고 이른 아침 7시쯤 만나 벌초를 하기로 약속했다.
연례행사 벌초하는 날
큰 형님과 동생을 태우고 가야 하니 아침 시간이 바쁘다. 아침을 먹지 못해 김밥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아침 6시 전에 문을 여는 곳도 없는 듯하다. 생각 끝에 5시 20분쯤,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시장 안은 대낮처럼 불빛이 밝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시장은 더 활기가 넘치는 듯하다.
일부 가게는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 시장 안에서 김밥에서 5줄, 바로 옆 떡집에서 3팩을 집어 들었다. 큰형님은 오늘 아침까지 근무일이다. 을지병원 인근 건물 앞에 도착하니 6시 12분, 20분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시간이 조금 단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벌초를 하러 출발하나보다. 도로가 그리 한가하지만은 않다.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남동생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했다.
어제 저녁에 비가 조금 내렸는데, 아직 덜 내렸는지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덮였다.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햇빛을 걱정했는데, 이제 비 걱정이다. 그도 잠시 내리던 이슬비는 곧 그친다.
산소로 가는 길 옆에 꽃들이 보인다. 나팔꽃처럼 생긴 메꽃이다. 꽃잎 위에 빗방울 떨어져 이슬처럼 맺혔다.
과거, 낫들고 아버지 따라다니던 지난 날
오래 전 아버지와 숙부님들이 살아계실 때는 산소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고향 마을 골짜기는 익숙해서 어느 정도 길을 알지만, 다른 마을 골짜기는 산소 위치를 잘 기억해야 했다.
경사진 언덕처럼 생긴 산을 올라서면, 많은 풀과 작은 잡목들이 무성한 산소를 만났다. 오직 낫으로만 풀을 베는 시기였다.
벌초를 하기 전에는 숫돌에 낫을 정성 들여 갈았다. 한 곳도 아닌 여러 산소를 벌초하다 보면, 사용할수록 낫은 무디어 가도 이빨도 빠졌다.
벌초를 처음 시작할 때는 쉽게 풀을 자를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 숙부님 그리고 사촌들이 함께 하다보면, 금세 끝낼 수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서 벌초하는 시절은 젊은 날이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그 후 아버지와 숙부님들이 돌아가셨다.
현재, 예초기 등에 메고 형제들과 함께 하는 오늘
지금은 흩어졌던 산소들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일은 없어진 셈이다. 낫으로만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낫은 쓸 일이 거의 줄었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골짜기를 울린다. 추석을 앞둔 9월이 되면, 이곳 저곳에서 예초기는 굉음을 내며 노래 부르는 듯하다.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그리고 둘째 숙부모님 산소는 산 위에 있다. 폭우로 흙이 쓸려내려 간 곳도 있고, 조망이 좋던 이곳은 나무들이 무성하여 산소를 호위하는 듯 우뚝 솟았다. 주변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낫을 이용하여 잡목을 베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과정은 예초기를 이용한다. 그래도 2대가 돌아가니 속도가 빠른 편이다. 예초기가 지나간 자리는 풀들이 소리 없이 쓰러졌다. 갈퀴로 긁어모아 주변 멀리 던진다.
1차로 벌초를 끝내고 사촌들과 줄지어 서서 인사를 올린다. 2차로 부모님 산소로 이동한다. 평장으로 만든 가족묘는 생각보다 넓다. 1차에서는 예초기 2대, 2차는 3대를 동원했다.
오늘은 이슬비에 구름으로 햇빛이 없는 가운데 벌초를 진행했다. 해가 떠올랐으면, 무더위로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다.
벌초가 끝났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쉽게 마무리된 것 같다. 1년에 딱 한 번만 등에 메고 벌초를 하면, 안 쓰던 근육들이 놀랄 수밖에 없다. 팔과 어깨가 얼얼해지고 긴장해서 근육통이 생긴다.
예초기는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농사를 짓는 둘째 형님은 완전무장한다. 모자 앞도 가리고 앞치마 두르듯 몸을 감싼다. 잘린 풀이나 흙 또는 작은 돌들이 튈 수 있어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밭 옆에 자리 잡은 가족묘 울타리 위로 애기나팔꽂 줄기가 타고 올랐다. 울타리 밖에는 예쁘게 핀 꽃들이 무성하다.
바로 옆 호박덩굴에는 늙은 호박들이 듬성듬성 매달렸다.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만들었는데도, 고구마밭은 완전히 파헤쳐졌다. 철조망을 뚫고 들어온 멧돼지떼가 밭전체를 뒤집었다. 고구마 한 개 남지 않은 밭을 바라보며, 둘째 형님은 매우 속상해한다.
미래, 마지막 벌초 세대일까
가정마다 제사 지내는 상황이 다르다. 요즘은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안도 많은 듯하다. 지금이 제사를 지내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벌초는 어떻게 될까. 요즘은 공원묘지 내 납골당 이용자가 많다. 장인, 장모님은 청주 목련공원에 합장 산소가 있다. 매장과 납골당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공원묘지는 벌초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적절하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까지 벌초를 할 수 있을까. 예초기를 등에 메고 요란한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큰 형님도 제사와 벌초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예초기를 등에 메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 같다. 추석 명절 전, 벌초가 추석 제사가 힘든 일로만 기억된다면, 후손들이 어찌 계속할 수 있겠는가.
제사 문화가 그렇듯, 벌초 문화도 새로운 트렌드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벌초하는 날 모습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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