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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일상

지리산 천왕봉 아래 바위 글씨,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

by 워~워~ 202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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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천왕봉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코스는 중산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동 거리가 짧은 만큼 경사가 급한 곳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법계사를 지나 계속 오르막길, 천왕봉 바로 아래 바위로 된 급경사 오름길은 급경사 지역으로 가다 쉬다를 반복하는 구간이다.

 

지리산의 힘을 빌어 일제를 물리치고자 하는 의병의 염원을 바위에 새긴 것일까.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 바로 아래에 위치한 바위에서 바위글씨(石刻)를  발견했다.

 

392자 바위 글씨(石刻,석각) 발견 및 판독

 

이 바위글씨는 권상순 의병장의 후손이 2021년도 9월에 발견하고 국립공원공단에 지난해 11월에 조사를 요청해 확인된 것이다.

권상순(1876~1931)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으며 , 1894년 전후로 지리산에 들어와 의병을 조직하고 훈련을 시키고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었다는 구전이 전해지며 추후 연구 및 조사가 필요

 

국립공원공단 연구진은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이 바위글씨 전문을 촬영하고 탁본과 3차원 스캔 작업으로 기초조사를 펼쳤다.

 

조사 결과, 자연석 바위에 전체 폭 4.2m, 높이 1.9m의 크기로 392여자가 새겨졌으며,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확인된 근대 이전의 바위글씨(194개 추정)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발 1,900m대)해 있고 글자수도 가장 많았다.

 

연구진은 이 바위글씨의 글자가 마모되어 전체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워 자체 조사자료를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최석기 부원장과 한학자 이창호 선생에게 의뢰하여 그 내용을 판독했다.

 

판독 결과, 이 바위글씨는 구한말 문인 묵희(墨熙, 1875~1942)가 지은 것으로 1924년 지리산 천왕봉 밑의 바위에 새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바위글씨를 번역한 최석기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부원장은 “천왕(天王)을 상징하는 지리산 천왕봉의 위엄을 빌어 오랑캐(일제)를 물리쳐 밝고 빛나는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토로한 것이 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석각
지리산 천왕봉 아래 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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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각 내용 요약

일제가 강점한 암울한 시대는 반드시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올것이라는 희망

 

이 글은 한말 경상우도의 유학자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문인 묵희(墨熙, 1875~1942 )가 짓고, 권륜(權倫)이 글씨를 써서 1924년(갑자) 7월 1일(임자일)<양력 8월 1일> 지리산 천왕봉 밑의 바위에 새긴 것으로 글자수는 모두 392자이다.

 

이 글의 요지는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의 대일통(大一統: 天王의 예악문물이 널리 미쳐 천하가 하나로 크게 통일되는 세상)을 주제로 하여, 천왕(天王)을 상징하는 지리산 천왕봉의 위엄을 빌어 오랑캐(日帝)를 물리쳐 밝고 빛나는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토로한 것이다.

 

이 글에는 동아시아 역대 왕조가 일어났다가 망한 것을 간추려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제가 강점한 암울한 시대는 반드시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역사를 돌아본 것이다.

 

또한 단순히 역사를 회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역대로 전한 성인의 문명, 공자의 춘추대의(春秋大義)를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한말의 유학자들이 지리산 천왕봉을 천왕으로 여기면서 ‘성인이 다스리는 문명국’이라는 자존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정신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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